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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 가볼만한곳]겸재 정선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겸재정선기념관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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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정선기념관 2층에 위치한 겸재정선기념실은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정리 해설하고, 정선 및 관련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전시해 놓은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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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기념관 첫번째 이야기





 겸재정선기념실에 들어가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선의 <금강내산도>인데, 정선은 진경산수화의 완성자로서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수많은 작품을 통해 표현하였으며, 특히 금강산을 즐겨 그린 것으로 유명해요. 화면에는 <금강내산도>가 그려져 있으며,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금강산의 모습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서 표현해 놓았어요. 





 겸재 정선은 1676년 한성부 북부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가문은 고조부까지는 명문이었으나 증조부 이후 벼슬을 하지 못해 점차 집안이 쇠락하였고, 그의 부친이 52세로 세상을 떠나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었어요. 이처럼 양반 출신인 정선이 그림에 뜻을 두게 된 것은 타고난 그림 재능과 어려운 집안 살림, 그리고 숙종 15년의 기사환국으로 과거 공부에 뜻을 두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요. 

 초년시절 정선의 학문적·예술적 성장에는 같은 동네에 대를 이어 살고 있던 안동 김씨 집안의 영향이 컸는데, 특히 영의정 김수항의 셋째 아들인 삼연 김창흡은 금강산, 설악산을 자주 드나들며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시로 읊어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여요. 





 정선의 초년시절을 보면, 정선은 서울 북악산 아래 유란동(현재의 청운동)에서 태어나서 사족 출신으로 문인의 교양을 닦았으나 타고난 그림 재능과 이웃에 살던 진경시의 대가 김창흡 등의 영향으로 서화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특히 정선이 태어나 생애의 대부분을 살게 되는 북악산, 인왕산 일대는 풍광이 뛰어나, 정선은 일찍부터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정선이 그림을 배울 무렵은 남종문인화풍이 유행하고, 윤두서와 조영석 등에 의해 한국적 풍속화가 점차 그려지기 시작하는 시기로, 정선은 37세 때인 1712년 금강산 여행에서 그린 《해악전신첩》이 문사들 사이에 유명해지면서 화가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어요. 





 정선의 성년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초에는 명나라에서 도입된 절파가 쇠퇴하고 청의 문인화풍이 점차 세력을 얻어가고 있었는데, 정선도 본격적으로 진경산수화풍을 확립하기 전에 문인화풍을 기본으로 했으며, 당시 공재 윤두서와 관아재 조영석이 새로운 문인화풍을 선도하고 있었어요. 

 정선은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진경시의 대가인 이병연과 절친하게 지내고, 당시 학예계의 지도자인 김창흡의 문하생들과 교류하면서 교양을 충실하게 쌓아 나갔어요. 





 농암집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 김창협의 시문집으로, 그의 아우 김창흡 등이 활자로 출간하였는데, 이 문집에는 금강산을 유람한 기록인 「동유기」를 비롯해서 「서유기」, 「유월출산구정봉기」, 「유백운산기」 등 산수를 유람한 기행문과 기행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요. 





 풍고집은 김조순의 시문집으로, 풍고집 권 16 잡저 중 「제겸재화첩」은 정선의 화첩에 쓴 글로서, 정선의 이력에 대한 내용과 정선과 심사정을 비교하여 평한 글을 담고 있어요. 





 정선은 40대 후반 하양현감, 50대 후반 청하현감을 지내면서 서울, 경기, 금강산 지역 이외에 경상도, 충청도 지역까지 널리 여행하면서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화폭에 옮겨담았는데, 이때를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의 확립시기로 볼 수 있어요. 





 정선은 46세 부터 만 5년 동안 경상도 대구 근처의 하양현감을 지내게 되는데, 이 시기에 정선은 경상도 지역의 다양한 명승을 그린 화첩인 《영남첩》, 《구학첩》을 그렸으나 현재 이 화첩들은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정선은 58세 되던 해에 경상도 청하현감(현재의 포항시에 속함)으로 내려가게 되었는데, 청하는 동해 바닷가에 있는 고을로, 인근 내연산에는 십이폭포와 유서 깊은 보경사가 있었고, 위로는 관동팔경과 통하고 경주나 경상도 지역 여로 곳과 연결된 지역으로, 정선은 이 시기에 경상도 지역 여러 명승지와 동해안까지 여행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어요. 





 삼연집은 김창흡의 시문집으로, 김창흡은 성리학의 대가로 형 김창협과 함께 후학을 양성하며 조선후기 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어요. 





 운와집은 홍중성의 시문집으로, 「운와집」에는 하양현감으로 떠나는 정선을 보내는 전별시와 단양군수로 떠나는 홍중성을 위해 정선이 <옥순봉>을 그려주었다는 내용, 이병연이 《해악전신첩》에 제문을 썼다는 기록이 나오는 등 매우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노년기 정선의 작품은 더욱 무르익은 경지를 보여주는데, 60대 후반에는 서울 한강변에 위치한 양천현령으로 재임하면서 부드럽고 서정적인 강변의 경치를 많이 그리게 되었으며, 이때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종래의 험준하고 힘찬 산악미에 부드럽고 서정적인 아름다움까지 겸비하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60세 되던 해에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정선은 청하현감을 2년 만에 그만두고 인왕곡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어요. 정선은 모친상을 치른 후 62세 때인 1737년에 한강을 거슬러 올라 절경이 있는 남한강 상류의 청풍, 단양, 영춘, 영월 등 충청도 사군 지역을 여행하고 《사군첩》을 제작하여 이병연에게 증정하였으며, 같은해 가을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인 《관동명승첩》도 제작하게 되었어요. 

 정선은 이 시기에 그의 진경산수화법을 거침없고 장쾌하게 그려내었으며, 서울 인왕산 주변을 소재로 한 <청풍계>, <한양전경> 등에서 그의 원숙한 면모가 잘 나타나 있어요.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더욱 원숙한 경지로 올려놓은 중요한 계기는 그의 나이 65세부터 70세까지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향교 부근에 있었던 양천현령으로 지낸 것인데, 정선은 양천현령으로 재직하면서 이병연과 시화를 교환하고 《경교명승첩》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기게 되었어요.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금강산인데, 정선의 금강전도는 내금강을 전체적으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어요. 








 정선은 평생 여러 차례 금강산 일대를 유람하였고, 100여 폭에 이르는 금강산 그림을 그렸는데, 그 중에서도 <금강전도>는 단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부감법을 써서 구도를 잡고, 뾰족한 암봉은 강하고 활달한 수직준법으로, 좌측의 토산은 부드러운 미점준으로 표현하였어요. 











 70대 이후 만년기의 정선은 붓을 들면 의식하지 않아도 그림이 되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이 시기의 작품은 언뜻 보면 미완성인 것 같은 파격적 구도와 생략적 묘사가 종종 등장해요. 





 정선은 화가로서는 드물게 84세까지 장수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정선은 보통 화가들이 도달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화풍의 완성과, 완성을 넘어선 자유자재의 경지에까지 이르렀어요. 

 <인왕제색>은 정선이 평생 수련한 필묵법의 정수가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며, <청송당>은 북악산과 창의문 능선 너머로 멀리 삼각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강하고 부드러운 필력과 진하고 연한 묵법의 농담이 혼연일체로 어우러진 경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만 70세가 되어 양천현령에서 물러난 정선은 인왕곡 집으로 돌아가 84세까지 여유로운 만년을 보냈는데, 그의 나이 81세에는 종2품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의 자리에까지 올랐어요. 

 정선은 1759년 8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양주 해등촌면 계성리(현 도봉구 쌍문동)에 안장되었어요. 









 서울과 한강은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금강산과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곳인데, 정선은 서울 중에서도 출생지인 북악산과 인왕산 부근을 가장 많이 그렸고, 60대 후반에 양천현령을 지내면서 한강변의 아름다운 풍광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겸재 정선이 평생에 걸쳐 탐방하고 그림으로 그린 지역들을 표시해 놓은 것인데, 현재까지 전라도와 제주도 지역을 그린 작품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해요. 

 정선은 18세기 전반에 진경산수화를 확립시켰는데,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그 이전에 비해 대상 소재가 엄청나게 넓고 다양해졌으며, 정선 이후에는 김홍도와 같은 뛰어난 화가가 등장하여 진경산수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계승 발전시켰으나 19세기 이후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정선은 진경산수화만 잘 그린 것이 아니라, 종래의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산수화도 잘 그렸으며, 관념산수화의 대표적인 예로 <소상팔경도>가 있어요. 그 외에도 정선은 각종 고사도, 화조화, 동물화, 초충화 등도 잘 그렸다고 해요.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풍의 변천을 그의 나이에 따라 분류해 놓았으며, 각 단계에 그가 그린 작품들을 함께 정리해 놓은 모습이에요. 




 겸재정선기념관 2층에 위치한 겸재정선기념실은 겸재 정선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별로 정리해 놓아서 겸재 정선과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으며, 각 시대별 작품을 함께 보여주어서 정선이 어떤 작품들을 어떤 곳에서 그렸는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곳이에요. 

 겸재정선기념관에 대한 더 많은 내용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전해드리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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