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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도

[군산여행 추천]세계로 뻗어가는 국제 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첫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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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 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이에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입구 모습이에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입장료는 성인은 2,000원, 청소년과 군인은 1,000원, 어린이는 500원이구요, 군산시민이나 단체의 경우에는 할인이 적용되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동절기에는 한시간 이른 오후 5시까지만 입장이 가능해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관람하기 전에 먼저 리플렛을 읽어보시면 보다 재미있게 관람을 하실 수 있어요. 또한 리플렛과 함께 제공되는 현장체험 학습지는 아이들이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지루한 박물관이 아닌 재미있는 박물관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 줄 거에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층 로비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 378호로 지정된 군산 어청도 등대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로비에는 군산의 근대사에 대한 짤막한 글이 적혀 있어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1층에는 어린이관이 있는데, 유아들을 위한 공간이더라구요. 그리고 그 앞에는 아이들이 군산의 근대사와 관련된 어청도 등대나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색칠해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관람은 1층에 있는 해양물류역사관부터 둘러보기로 했어요. 





 해양물류역사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오른쪽 벽면에는 우리나라와 군산의 해양물류사에 관한 주요한 사건들을 선사시대부터 시대별로 정리해 놓았어요.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산의 구석기 유적은 2002년 군산 내흥동 군산-장항 철도연결사업구간 제6공구 지역 지표면 3m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출토된 석기는 대체로 유문암과 석영으로 만든 몸돌, 밀개, 격지 등으로 우리나라의 후기구석기에 해당되요. 

 군산의 신석기 문화는 바다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해안가와 섬에 형성된 조개무지가 특징적인데, 군산 가도와 노래섬 조개무지에서는 빗살무늬토기부터 회청색 경질토기까지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어서 군산지역 토기류의 발전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청동기시대 군산지역의 문화적 특징은 지석묘와 석관묘, 옹관묘 등 다양한 무덤이 새롭게 등장한다는 점이며, 군산에서는 서해안의 다른 지역에 비해 지석묘의 밀집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여요. 

 삼한시대 군산지역은 삼한 중 한곳인 마한의 54개 소국 중에서 두세곳의 소국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산의 오성산 기슭에 자리한 성산면 남전유적에서는 조개무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조개무지에서는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6세기까지 7개의 문화층에서 기종이 다양한 토기류와 철기류, 골각기, 패각류 등이 출토되었어요. 





 군산지역이 삼국에 포함되는 시기는 기원후 369년 백제의 근초고왕이 마한지역을 공략하여 백제에 편입시키면서부터인데, 이때부터 군산지역은 백제의 지방행정구역에 포함되었으며, 백제가 도읍을 웅진으로 옮긴 후 백제의 대내외 관문으로서 군산지역이 군사적 중요성을 지녔던 것으로 추정되요. 





 군산이라는 지명이 유래된 군산도(선유도)는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 물줄기가 한데 모이는 곳에 위치하여 줄곧 해상교통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며, 백제시대에 이어 고려시대에도 중국왕조들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하여 국제외교의 관문으로서 큰 번영을 누렸다고 해요. 





 조선시대 군산은 태조 4년에 회미현을 옥구현과 병합하여 옥구와 임피현 중심의 행정체제로 정비되었으며, 이후 세종 때에는 군산도(선유도)의 수군부대인 군산진을 옥구형 진포(현 군산 내항)로 이전하여, 이후 진포를 군산이라 칭하고 군산도(선유도)는 고군산이라 칭하게 되었어요. 





 조선시대 군산지역 주민들은 옥구(회현), 임피를 중심으로 전통적인 씨족 마을을 구성하고 살았는데,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옥구 지역의 고, 두, 문, 전, 강, 박, 김, 서, 반씨 등과 임피 지역의 이, 진, 채, 황, 최, 김씨 등이 있었다고 해요. 







 선조 때 최호 장군이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된 교지와 용양위 부호군에 임명된 교지인데, 일반적인 교지의 종이 크기와 두께보다 작고 얇아진 형태의 교지로 임진왜란으로 인해 물자부족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어요.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최호 장군에게 내린 호신용 보검으로 삼인보검, 호신장영이라는 명문이 칼 몸에 새겨져 있어요. 





 나포면 서포리에서 발견된 선산 김씨 우종의 묘지석인데, 묘지석은 명정의 대용으로 군산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형태라고 해요. 





 조운선이란 고려와 조선시대에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세금(세곡)을 도성으로 운반하는 운송선을 말하는데, 이 조운선은 고려시대 이후 군산에 모아진 전북지역의 세곡을 개경과 한양으로 운반하던 물류유통의 항구였던 군산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고증을 통해 최대한 조운선의 원형에 가깝게 제작된 것으로 원래 크기의 1/3로 축소하여 제작되었다고 해요. 





 고려시대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거두어들인 세곡을 보관하는 창고와 운반하는 관청을 전국 60개 포구에 두었는데, 이를 조운제도라고 해요. 이후 60개의 포구를 12개로 통폐합했는데 전북지역은 군산의 창안에 진성창이 설치되었어요. 고려 말에는 왜구들이 빈번히 조창을 공격하였으며 그 와중에 군산은 진포대첩의 현장이 되었어요. 





 조선 초에는 진성창을 대신하여 옥구현 북면(현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인근지역)에 군산창이 설치되었고, 조운선과 수많은 장삿배 및 어선이 왕래하던 군산창과 군산포는 호남 최고의 항구가 되었고 상업 활동이 활발해져 근대도시로 발전하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어요. 






 고려말부터 조선초까지 서해안 일대는 왜구의 노략질이 그치지 않았는데, 이에 조선왕조는 오늘날의 고군산에 수군 진을 설치하였고, 이후 세종 8년(1426)에 옥구현 북면지역인 진포(오늘날의 군산)에 군산진이라는 이름으로 이전하였어요. 





 객주는 전국 각지의 상품이 모이는 거점에서 상품을 위탁받아 팔아주거나 매매를 주선하며 창고업, 화물수송업, 금융업 등의 기능을 겸하였던 중간상인을 말하는데, 군산은 교통의 중심지이자 전라도의 조세가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고 객주도 많았으며, 군산의 객주들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교육사업을 지원하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대항하기도 하였어요. 






 고군산군도는 유무인도서 63개가 모여 있는 군산시 관광자원의 보고인데, 이중환의 「택리지」에 따르면 "군산도는 천혜의 항구와 어장이 있어 매년 봄여름에 고기잡이철이 되면 각 고을 장삿배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바다 위에서 사고팔아 주민들이 이것으로 부유하게 되어 집과 의식을 다투어 꾸미는데 그 사치함이 육지보다 심하다"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에요. 





 고군산군도(선유도)에는 인조 2년(1624)에 수군 진이 선치되었는데, 고군산진은 설치 이후 서해안 방어의 중요성으로 인해 전라 우수영을 대신하여 서해의 수군을 통솔하였으며, 조선의 수군 진 가운데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해요. 

 고군산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분이라는 장례 풍습이 남아 있었는데, 초분이란 섬에서 갑자기 상을 당하거나 한정된 토지에서 묏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또는 정월에 사람이 죽게 되면 땅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시신을 눕힌 후 짚으로 이엉을 엮어 덮은 후에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시신이 육탈하면 그때 뼈를 골라 이장을 하는 이중 장제라고 해요. 





 조선시대 수산업은 고정식 어구인 어전을 주로 이용하였는데, 어전이란 자연의 주기적 변화인 밀물과 썰물을 이용하여 물이 들어왔을 때 물과 함께 해안으로 들어온 물고기를 해안에 설치한 반달 형태의 구조물을 이용하여 물이 빠져나갈 때 물은 구조물 틈으로 빠져나가고 물고기만 남아 잡는 형태에요. 고군산 일대에서는 삼이나 면을 이용하여 제작한 그물망인 주벅이 대규모로 만들어져 운영되었는데, 조선시대 고군산 지역의 어전을 이용한 생산량은 서해안 최고였다고 해요. 





 군산 해역은 예부터 한·중·일을 연결하는 주요 해상로일 뿐 아니라 사신선 또는 조세나 공물을 개경이나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운선의 중요한 기항지였는데, 그에 따라 군산 해역에는 많은 선박들이 왕래하였고, 풍랑에 의해 난파되는 선박도 많았다고 해요. 군산 지역에서는 20여건 이산의 해저 유물 발견 신고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비안도, 십이동파도, 야미도 해역에서는 대규모 해저 유물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아래 두 장의 사진은 해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에요. 






 제가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 방문하였을 때는 '군산의 수문장 오식도 대포의 귀환'이라는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어요. 


 




 19세기 중엽 고군산군에는 이앙선이 출물하여 조선정부를 긴장시켰는데, 당시 군산은 전라북도의 세금을 보관, 운반하는 조운창이 있는 중요 거점지역으로 오식도는 군산항의 입구에 자리하여 세금을 운송하는 선박의 중간 기착지였어요. 이러한 이유로 오식도에 포군이 배치되었으며, 오식도 화포는 당시 군산에 배치된 포군의 화포로 추정된다고 해요. 





 오식도 화포는 군산을 외적에게 무기력하게 넘겨준 것이 아니라 당시로서는 최신형 대포를 배치하여 방어하였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에요.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은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인데, 그 중에서도 해양물류역사관은 국제무역항으로서의 군산의 옛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곳이며, 단순히 유물만을 전시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에 관련된 설명을 곁들임으로서 국제무역항으로서의 군산의 옛 모습에 대한 이해를 돕는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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