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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 가볼만한곳]광화문광장 지하에서 만난 세종이야기 첫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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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이야기는 광화문광장 지하에 위치한 곳으로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 후면에 출입구가 마련되어 있어요. 광화문광장 외에도 세종문화회관, KT, 세종로 주차장 등 출입구가 세군데 더 있으니까 가까운 출입구를 이용하시면 되요.  

 세종이야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0시30분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에요. 





 세종이야기를 광화문광장 출입구를 통해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모습인데, 한쪽 벽면에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인 훈민정음 창제,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편종 등이 부조 형식으로 벽에 새겨져 있어요. 






 세종이야기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훈민정음 자음들의 모습이에요. 





 세종이야기 반대쪽 벽면에는 고은 시인의 '아 세종'이라는 시도 새겨져 있어요. 





 그 옆에는 송강 정철의 작품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쓰여 있는데, 송강 정철은 훈민정음 창제 이후 한글을 가장 쉽고 아름답게 표현한 인물로 그의 대표작인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전시해 놓은 것이에요. 






 세종이야기 안내도의 모습인데, 세종이야기는 충무공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어서 한번에 양쪽을 다 둘러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세종이야기는 위대한 성군이었던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적 자존감과 민족적 긍지를 알리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고 해요. 





 세종이야기는 인간 세종, 민본사상, 한글창제, 과학과 예술, 세종의 군사정책, 한글갤러리, 한글도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종대왕이 남긴 업적만을 볼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의 다양한 면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세종이야기 중앙에 설치된 세종대왕의 초상화에요. 





 세종이야기 중앙에 설치된 포토존인데, 임금님이 앉으시던 의자인 어좌와 뒷편에는 일월오악도 또는 일월곤륜도라고 불리는 일월오봉병이 그려진 병풍이 설치되어 있어요. 이 어좌에서 사진촬영을 하실 분들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셔야 되요. 





 세종 연대기는 세종대왕의 탄생에서부터 세종대왕이 승하하신 1450년까지 세종대왕의 업적과 당시의 세계사의 주요사건들을 함께 정리해 놓았는데, 중요한 내용만 살펴보면 1397년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탄생하여, 1418년 22세의 나이에 조선 4대 임금으로 즉위하고, 1419년에는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1420년에는 집현전을 설치하였어요. 

 1423년에는 조선통보라는 화폐를 주조하였고, 1427년과 1429년에는 편경과 편종을 제작하였으며, 1433년에는 혼천의와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본을 제작하였다고 해요. 

 1437년에는 6진을 개척하였고, 1441년에는 측우기를 발명하였으며, 1443년에는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였어요. 이후 1450년에 승하하실 때까지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이용한 다양한 작품을 편찬하였어요. 

 이와같이 세종 연대기는 중요한 내용들만을 추리더라도 그 양이 상당할 정도로 세종대왕의 업적은 다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것 같아요.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며 농사는 정치의 근본이다라는 이 말은 세종대왕의 민본사상을 잘 나타낸 말이에요. 





 세종대왕은 백성을 사랑한 임금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예로 부민고소금지법, 노비출산휴가제도, 전세제도 여론조사 등을 들 수 있어요. 

 부민고소금지법은 백성이나 하급관리가 수령의 잘못을 고발하는 것을 금지한 법인데, 이로 인해 백성들의 억울함이 늘어가자 세종은 1433년에 부민고소금지법을 개정하여 백성의 고소를 받아들여 억울함은 들어주되 그 고소로 인해 수령을 처벌하지는 않도록 하여 절충안을 마련하였다고 해요. 

 노비출산휴가제도는 관노에게 출산 1개월 전부터 복무를 면제해주어 총 130일의 출산휴가를 주고 4년 뒤에는 노비의 남편에게도 1개월간의 휴가를 주는 제도에요. 

 전세(田稅)는 논밭에 부과되는 세금인데, 종래의 전세제도는 관리의 부정으로 인해 농민에게 큰 피해를 주기 일쑤였고, 이에 따라 세종은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공정한 세금측정을 위한 연구를 거듭하여 공법을 확정하게 되었어요. 

 이와같이 세종대왕은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백성의 불편함을 덜고자 항상 고심하였던 임금이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외에도 세종대왕은 가난해서 혼기를 놓친 자들에게는 관청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노인공경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지 않았어요. 





 세종어록에는 세종대왕의 관계의 리더십과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말들이 있는데, 그 중의 일부만 살펴보면,

 - 나라를 다스리는 법은 믿음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진실로 차별 없이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임금이 어찌 양민과 천민을 구별해서 다스릴 수 있겠는가.

 -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되 한 사람의 말만 가지고 결정해서는 안된다.

 이와같이 세종어록에서 보이는 세종대왕의 뛰어난 리더십은 그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또한 세종어록은 조선시대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마음속 깊이 새겨두어야 것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인간 세종에 대해 살펴보면 이름은 이도, 자는 원정이며, 1397년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취미는 공부와 독서이고, 절대음감의 소유자로 지나친 독서로 인한 눈병도 있었다고 해요. 세종대왕은 과학, 음악, 서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두루 정통했으며, 토론을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경청했다고 해요. 





 한글도서관에는 세종대왕에 관한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으로 세종대왕 관련 서적 뿐 아니라 충무공 이순신 관련 서적, 그 밖의 다양한 분야의 참고 서적도 배치되어 있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어요. 






 세종이야기 곳곳에는 세종의 업적을 탁본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는데, 탁본한 것을 출력하거나 메일로도 전송이 가능하다고 해요. 





 훈민정음은 1443년에 만들어져 3년동안 다듬고 이를 실제로 써 본 뒤에 반포되었으며, 훈민정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 28자였으나, 그 중 아래아, 여린히읗, 반시옷, 옛이응 등 4자가 사라지고 지금은 24자만 쓰고 있어요. 

 훈민정음은 5자의 자음 기본자와 3자의 모음 기본자를 가지고 전체 문자체계를 만들었으며,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원리는 5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고 사용할 수 있을만큼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디지털기술로 조합하기에 가장 적합한 문자라고 할 수 있어요. 





 문헌 속 한글 코너에는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용비어천가, 훈민정음 해례본,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훈민정음 언해본 등이 전시되어 있어요. 






 한글창제 코너에는 훈민정음을 만들게 된 배경부터 훈민정음 반포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장면 장면을 인형들을 통해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놓았어요. 





 디지털 시대의 한글 코너에는 한글의 원리를 디지털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해 놓았어요. 






 찌아찌아족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주 부톤 섬의 바우바우시에 사는 소수민족으로, 찌아찌아족은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나 고유의 문자가 없어서 로마자보다 고유 언어의 발음을 잘 살려 적을 수 있는 한글을 2009년 7월부터 적용하고 있다고 해요. 





 세종이야기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은 다음번 포스팅에서 전해드리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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