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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문화역사관은 경주타워 전시관 1층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시대 유물과 생활상, 8세기 서라벌 왕경을 재현한 미니어처, 석굴암 모형 등 신라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문화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신라문화역사관 안내도인데, 신라문화역사관에는 월지, 신라시대의 왕경이었던 서라벌 미니어처, 황룡사, 석굴암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경주여행을 처음 와서 어느 곳을 봐야할지를 모르시는 분이라면 경주타워 내에 있는 신라문화역사관을 먼저 둘러보는 것도 경주여행을 알차게 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라문화역사관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8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왕경이었던 서라벌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 왕경복원모형에서 경주의 주요한 문화재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거에요.
신라시대의 유물인 금관, 금제 관모, 금제 허리띠, 조익형관식, 금동신발인데,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여기에 전시된 것들은 복제품이에요.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에는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생각되요.
신라인들의 관혼상제에 대한 설명인데, 관례는 중국에서 예교가 들어오면서 함께 전래되었으며, 성년으로서의 계율을 가르치고 명산대처를 순회하며 연마시켰던 신라의 화랑제도도 진보된 관례의 한 표현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요.
신라인들의 혼례는 서민들은 살림살이에 맞춰 술과 밥을 해서 나누어 먹는 정도에 그쳤으나 왕실을 포함한 상류층은 자못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렀다고 해요.
신라인들은 초기에는 순장의 풍습이 있었으나, 4, 5세기 사이에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가, 7세기에는 도교가 들어오면서 상례도 바뀌기 시작해서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숭불, 숭유 정책을 병용하였기 때문에 불교식 다비와 유교식 매장을 병용하였던 것으로 보여요.
삼국사기에 따르면 687년(신문왕 7년)에 처음으로 종묘의 제사 기록이 보이는데, 신문왕 때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하고 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그 영향을 받아 중국의 5묘제가 전래되어 실시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신라의 대외교류는 삼국을 넘어섰으며, 발해, 당, 일본 뿐만 아니라 멀리 아라비아와도 교역을 하였으며, 공무역과 사무역이 동시에 행해졌어요. 신라의 수출품은 주로 비단, 베, 금, 은, 인삼, 약재품, 공예품 등이었고, 수입품으로는 당에서 들어온 비단, 서적, 사치품과 아라비아에서 들어온 양탄자, 유리그릇, 향료, 귀금속 등이 있었어요.
특히 신라인 집단 거주지인 신라방은 양자강 연안 등 배의 정박과 보급을 위한 주요 항구에 자리잡았으며, 신라방에는 신라원이라고 불리는 사찰과 신라인들을 관리하는 신라소라는 행정기관도 설치되어 자치권을 행사할 정도로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요.
신라는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사찰이 많이 지어졌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만파식적의 전설이 내려오는 감은사,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건축을 통해 불법의 세계를 현실세계에 드러낸 불교문화의 백미인 불국사 등이 있어요.
황룡사는 진흥왕 대에 월성의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고자 했는데,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기 때문에 절로 고쳐 짓고 절의 이름을 황룡사라 했다고 전해지며, 선덕여왕을 거쳐 경덕왕 대에 이르러서야 완공되었다고 해요. 황룡사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불에 타 지금은 주춧돌들만이 남아있지만 1976년부터 7년의 발굴을 통해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대지의 면적이 동서로 288m, 남북으로 281m, 총 면적 2만여 평에 이르는 광대한 사찰이었음이 밝혀져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에요.
황룡사 구층탑은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예맥 등 신라와 이웃하고 있는 9개의 적국을 상징하며, 이 탑은 적으로부터 신라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제압하겠다는 신라인들의 호국의지가 담겨져 있는데,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지고 지금은 그 초석만 남아있어요.
신라의 탑은 시대별로 6세기 중엽에는 황룡사 구층목탑과 같은 목탑이, 7세기 초에는 안동의 신세동 칠층전탑, 동부동 오층전탑과 같이 구운 벽돌로 조성하거나 돌을 벽돌처럼 잘라 축조한 전탑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후에는 감은사지 삼층석탑, 석가탑, 다보탑과 같은 석탑이 주로 세워지게 되었어요.
우리나라 석조예술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석굴암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단단한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본존상을 비롯한 38구의 조각과 수천톤에 달하는 돌을 쌓아 만든 돔 건축에서 신라인의 과학성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어요.
석굴암을 전면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실제로 석굴암에 가게 되면 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네요.
측면에서 바라본 석굴암의 모습이에요.
석굴암은 신라 경덕왕 때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세운 것으로,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조형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으로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어요.
석굴암은 바닥 밑으로 지하수가 흐르도록 해 바닥 온도가 벽면의 온도보다 낮게 유지되어 불상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현상을 막았고, 지하배수로에는 자잘한 자갈을 외부로 길고 두텁께 깔아서 자연건조를 시켰으며, 주실 상층부에도 감실을 받치고 있는 돌 사이에 작은 틈이 있어서 공기를 순환시키는 등 석굴암은 과학과 기술이 접목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는 기계에 의해 냉방과 온방, 습도조절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석굴암을 보기 위해서는 유리창 바깥에서만 볼 수 있어요.
경주의 남쪽에 솟아 있는 남산은 산 전체가 야외 박물관이라고 불릴만큼 불상과 탑, 석등, 연화대좌 등 수많은 불교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이 유적들은 남산의 자연경관을 크게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배치되어 있어요.
신라문화역사관 한켠에는 여러 유물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복제품이라서 그런지 유물에 대한 감흥은 조금 떨어지더라구요.
신라역사문화관을 둘러보면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 중의 하나가 포토존인데, 예전 신라의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어요.
또한 그 옆에는 여왕이 되어서 사진을 찍어볼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답니다.
신라문화역사관은 경주를 처음 방문하시는 분에게는 경주여행 일정을 짜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경주의 여러가지 문화재에 대해서 폭넓게 알아볼 수 있는 곳이에요.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 가시게 된다면 경주타워 내에 있는 신라문화역사관을 꼭 들러보시길 권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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