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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 가볼만한곳]광화문광장 지하에서 만나는 충무공 이야기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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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광장 지하에서 만난 충무공 이야기 세번째 포스팅이에요. 충무공 이야기 이전 포스팅을 보시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세요. 

충무공 이야기 첫번째

충무공 이야기 두번째







 7년간의 임진왜란은 조선이 일본의 침략을 격퇴하면서 끝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 수군과 조선 수군을 이끈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의 결과는 뒤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사실이에요.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며 통일국가를 이루었는데, 그는 조선을 거쳐 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였으며, 명나라를 치기 위한 길을 열어달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에 침입하였고, 이로 인해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에요. 

 왜군은 침공 초기에는 부산진성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연이어 조선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며 침공 20여일 만에 한성을 함락시키는 등 승기를 잡아가는 듯 했으나, 조선 관군의 반격과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이어진 진주대첩으로 전쟁의 흐름이 바뀌게 되었으며, 이후 남부지방으로 후퇴한 왜군은 질병의 발생과 군량미 부족 등으로 전쟁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자 명나라와 강화 협상을 벌이게 되었어요. 

 명나라와의 강화협상이 결렬되자 왜군은 1597년에 재침략을 단행하게 되는데, 1592년(임진년)의 1차 침입을 임진왜란, 그리고 1597년(정유년)의 2차 침입을 정유재란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정유재란 당시 왜군의 극악무도함은 그 도를 넘어섰으며, 조선의 피해는 극심했어요. 그러나 1598년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병사하자 왜군은 본국으로 철수하였고, 7년여에 걸친 전쟁은 종식되고 말았어요. 





 아래 사진은 임진왜란 7년 동안 벌어진 주요한 해전들을 지도에 표시해 놓은 것인데, 많은 해전이 거제도 주변에서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임진왜란 7년간의 해전사를 영상으로 볼 수도 있는데, 영상이 끝나고 나면 게이트가 열리면서 거북선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전투력은 병력, 무기, 조직력이 조화될 때 극대화 될 수 있으며 때와 장소에 의해서도 좌우될 수 있는 것인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어느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 

 병서에 통달했던 이순신 장군은 해전에 임했을 때 항상 전략적 사고로 형세를 살피고 전술을 구사하였고,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정신력과 조직력을 강화하도록 하였으며,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조선 수군이 유리한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뛰어한 해전술을 펼쳤어요. 





  아래 사진은 임진왜란의 주요 해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조선 수군이 처음으로 전쟁에 참여한 것은 임진왜란이 시작된 지 20여 일이 지난 옥포 앞바다에서였는데, 해안가에 배를 정박하고 약탈을 하고 있던 왜군을 화포와 화살로 공격하여 순식간에 26척을 분멸하면서 첫 승전고를 올렸으며, 조선 수군은 첫 승리와 함께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이후 이순신이라는 최고의 지휘관을 필두로 연전연승의 기록을 세워 나갔어요. 

 옥포해전을 시작으로 임진왜란 7년의 기간 동안 사천해전, 당포해전, 한산대첩, 부산포해전, 명량해전, 노량해전 등 수많은 해전을 치렀는데, 충무공 이순신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으로 모든 해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어요. 




 임진왜란 7년 해전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을 살펴보고, 각각의 전투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어떻게 왜군을 무찔렀는지를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한 책을 통해서는 주요 해전인 한산대첩과 노량대첩 등만을 다루는 데 비해 충무공 이야기에서는 임진왜란 7년간의 주요 해전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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