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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 가볼만한곳]한성백제박물관 백제의 왕궁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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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백제박물관올림픽공원 내에 위치한 곳으로, 서울의 고대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유물을 통해 2천년 서울 역사의 기반인 선사문화, 한강과 서해를 무대로 고대 동아시아의 허브 역할을 했던 한성백제문화, 백제에 이어 한강을 차지한 고구려와 신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에요. 





 한성백제박물관 입구 모습인데, 한성백제박물관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은 휴무이며, 관람료는 무료에요. 한성백제박물관 주차료는 소형은 최초 1시간은 1,000원이며, 이후 초과 20분당 500원씩 추가되므로 올림픽공원에서 산책을 즐기실 분들은 남2문, 북2문, 또는 동2문으로 들어오셔서 4,000원을 내고 일일주차를 하시는 편이 나을 거에요.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2014 봄 백제문화특별전 「백제의 王宮」은 3월 25일부터 6월 1일까지 진행된다고 해요. 





 서울은 백제의 5백년 왕도였으며, 1997년 풍납토성 내부를 발굴조사하여 땅 속 4m 깊이에 백제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확인하였으며, 1999년에는 풍납토성 동벽을 발굴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대 평지토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해요. 이후 경당지구, 미래마을 등지를 차례로 발굴하였는데, 풍납토성 경당지구에서 발견된 대형 창고와 우물, 대형 지상건물지는 백제 왕궁의 일부로 추정되며, 백제 왕궁의 나머지 부분은 지금 건물 밑 땅 속에 남아있다고 해요. 이에 풍납토성에 잠들어 있는 백제 왕궁에 대해 알리고자 이번 전시가 기획되었다고 해요. 





 기획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백제의 역대 왕들의 연대표를 볼 수 있는데, 백제의 왕은 시조인 온조왕부터 마지막 의자왕까지 모두 31명이며, 성씨는 부여씨라고 해요. 





 그 바로 옆에는 백제 왕계도가 있는데, 백제의 왕들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만을 뽑아서 그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아래 사진은 백제의 유물로 청동초두라는 것인데, 풍납토성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해요.





 한성은 위례성을 확장한 도성인데, 한성에는 정궁과 별궁이 따로 있었으며, 남성과 북성 2개로 나뉘어져 있었어요. 한성의 중심은 북성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백제 한성의 북성은 지금의 풍납토성, 남성은 지금의 몽촌토성으로 추정되고, 풍납토성, 몽촌토성에서 남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는 백제 지배층의 묘역으로 알려진 석촌동, 가락동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어요. 






 백제에서는 왕이 정사를 처리하고 의례를 행하던 곳을 남당이라고 불렀으며, 백제의 남당은 정전과 편전의 기능이 분리되기 전의 정무공간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곳이에요. 





 아래 두 장의 사진들은 백제에서 그릇받침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풍납토성에서 발견된 것이에요. 







 백제는 도성 안에 왕궁을 중심으로 왕실의 조상신을 모신 종묘 또는 시조묘,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신 사직단,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단 등 국가제사와 관련된 다양한 의례공간을 배치했는데, 시조묘 제사는 나라와 백성의 일체감을 고취할 뿐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으로 생각되요. 






 백제 한성도읍기에도 왕의 수라를 담당하는 수라간을 비롯해서 왕의 의복을 전담하는 자수방, 세답방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 수라간, 수방, 세답방 등은 주로 정전이나 침전 등 주요 전각들 주변에 위치했던 것으로 보여요. 







 백제 한성도읍기의 대표적인 왕실창고로는 경당지구 196호 유구가 있는데, 유구 내에서는 중국에서 수입한 유약바른도기를 비롯해서 백제토기인 긴몸항아리, 큰독 등이 다수 출토된 것으로 보아 왕실 직속의 식료품 창고였던 것으로 생각되요. 





 백제 한성도읍기의 왕성인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에서는 연못지들이 확인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궁 바깥에 위치한 것이며, 궁 안의 연못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요. 







 백제 한성도읍기의 수공업은 대개 관영수공업으로서 궁궐에서 필요한 물품, 국왕의 사여품, 대외 교역품, 무기를 비롯해 관천에서 필요한 물품 등을 주로 생산한 것으로 보이며, 상당수의 공방은 왕궁 바깥에 두었으나 왕궁에서 소비되는 주요 물자 및 외국과의 교역을 위한 물품 제작 등은 왕궁 안에 공방을 설치하고 왕실에서 직접 관리했던 것으로 보여요. 





 궁벽, 궁문, 망루, 회랑은 왕궁의 내·외곽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로, 궁벽, 궁문, 망루는 왕궁 안과 왕궁 바깥을 구분짓는 표지적 건축물인 동시에 왕궁의 위상을 높이고 외부로부터 왕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회랑은 주요 전각들을 연결하는 긴 복도로서 공간을 구획하거나 전각을 보호하며 출입하는 사람이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어요. 한성 도읍기에는 이와 관련된 유물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익산 왕궁리 유적을 보면 중국 고대 도성들의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여요. 







 백제의 왕은 국가의 최고통치자로서 정치업무는 왕의 명령에 의해 시행되었지만 그 내용은 남당에서 군신들과의 회의를 통해 결정하였던 것으로 보여요. 백제의 왕은 관리를 임명하였으며, 전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대규모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어요. 백제에서는 고이왕 때부터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는 등 초보적인 법령을 시행했으며 율령 반포는 4세기 무렵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져요. 

 백제의 왕은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농사를 장려하는 명령을 내리고 농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징발을 자제하였으며,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있으면 세금을 면제해주고 곡식을 나누어주거나 죄수들을 사면하기도 했어요. 






 정치, 외교, 제사 등의 주요 업무 이외에도 백제의 왕은 다양한 활동을 벌였는데, 그 중에는 불교 인사를 접견하거나 잔치를 베풀고 활쏘기를 하거나 구경하는 일 등이 포함되었다고 해요. 





 백제는 일찍부터 동명왕묘를 세우고 시조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도 지냈던 것으로 보여요. 또한 백제왕은 주변국에 사신을 파견하고 다른 나라에서 사신이 찾아오면 사신을 접대하는 일을 맡았는데, 백제는 고구려, 신라, 낙랑, 대방, 말갈, 진, 남조, 왜 등 주변의 다양한 나라등과 사신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여요. 





 백제 왕족은 부여계통 종족으로 다른 귀족에 비해 신성성과 차별성이 강조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왕의 8촌 이내의 친족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후보군으로 골족이라고 불렀으며, 태자, 왕비, 후궁 등은 왕궁 안에 상시 거주했던 것으로 보여요. 또한 왕족들은 고위관료에 임명되어 왕을 보좌했으며, 일부는 외교활동을 벌이기도 했어요. 






 왕궁 안의 업무와 생활을 위해서는 환관이나 궁녀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는데, 환관이 백제 왕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었던 듯하며, 궁녀들은 왕궁 안에서 필요한 노동을 담당했어요. 한편 시위군은 왕궁을 방어하고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일을 담당했으며, 사비도읍기에는 그 숫자가 2천 5백명이나 되었다고 해요. 

 백제의 국정 업무는 대부분 왕궁 안에서 이루어졌는데, 백제 건국 초기에는 관직이 분화되지 않고 좌보와 우보가 군사와 행정 업무를 포함한 국정 전반을 총괄했으나, 고이왕 때부터 군사업무와 국정업무가 각각 좌장과 좌평으로 분리되었어요. 








 백제의 왕은 때때로 왕궁을 떠나 도선이나 지방을 돌아다니며 정치 활동을 했는데, 백제의 왕이 왕궁 바깥에서 벌이는 활동으로는 친정, 열병, 사냥, 순무 등이 있었다고 해요. 

 친정은 왕이 전쟁에 직접 출정하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전쟁 경험은 왕의 지위와 권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열병은 왕이 최고 군사통수권자로서 통치권을 확인하고 새로운 무기나 전술을 점검하는 것으로 주로 농한기에 실시했다고 해요. 

 순무는 왕이 몸소 도성과 지방을 돌아보며 농사를 권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는 등의 행위를 말하는데, 백제에서는 농업이 극히 중요시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어요. 







 풍납토성은 1997년 발굴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8년 동안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풍납토성 내부 발굴면적은 전체 면적의 10%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풍납토성 미래마을에서 출토된 약 1,000여점의 토기 조각으로, 아직 발굴하지 못한 90%의 유물들이 모두 발굴된다면 백제 한성도읍기 역사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될 것이에요.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제의 왕궁 특별전은 우리 역사에서 약간은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백제의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위에 적은 것처럼 풍납토성의 유물이 모두 발굴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백제문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될거에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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