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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 가볼만한곳]조선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국립고궁박물관 세번째 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서울 가볼만한곳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제 2전시실인 「조선의 궁궐」 전시실에 대해 소개해 드릴께요. 국립고궁박물관 이전 포스팅을 보구 싶으시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국립고궁박물관 첫번째 이야기

국립고궁박물관 두번째 이야기








 궁궐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행정의 중심이자 왕실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수도의 가장 중요한 곳에 위치하는데, 조선은 고려의 구세력들의 기반을 제거하고 나라의 번영을 도모하기 위해 풍수지리 사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수도와 궁궐터를 정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조선은 한양을 수도로 정하였는데, 조선왕조가 궁궐로 정한 경복궁은 북쪽 백악산을 주산으로 남쪽의 목멱산, 동쪽의 타락산, 서쪽의 인왕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좌우에는 종묘와 사직을 배치했어요. 조선은 경복궁을 지은 이후에도 창덕궁(1405년), 창경궁(1483년), 경덕궁(현 경희궁, 1620년), 경운궁(현 덕수궁, 1897년) 등을 지어 상황에 따라 궁궐을 옮겨가며 사용했어요. 





 해촌 김학수 화백이 경복궁 관련 도면 및 각종 자료 등을 근거로 하여 그린 북궐도(경복궁도)인데, 이는 고종대 중건 당시의 경복궁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것이에요.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의 모습이에요. 





 조선시대의 수도 한양과 5대 궁궐을 그린 것인데, 한양 도성은 커다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조선 왕조의 5대 궁궐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현 경희궁), 경운궁(현 덕수궁)과 종묘의 사진인데, 모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어요. 





 조선시대 수도 한양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현 경희궁), 경운궁(현 덕수궁) 등 5개의 궁궐이 있었는데, 임금은 한 궁궐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경우에 따라 궁궐을 옮겨가며 사용하였는데, 이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동안 왕의 사랑을 받으며 사용된 것은 창덕궁이었다고 해요. 





 중앙에 영선사(營繕司) 현판이 보이는데, 영선사는 궁궐 건축이나 수리 등 토목 관련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1895년에 궁 내에 설치되었다가 1907년 폐지되었다고 해요. 

 영선사 현판 아래에는 조선시대의 궁궐에 관한 대표적인 기록인 궁궐지가 있는데, 이 궁궐지는 각 전각별 위치와 그 곳에서 펼쳐진 중요한 정치·문화적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에요.  





 서울의 옛 지도인 수선전도는 김정호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인데, 서울 한성의 주요 도로와 궁궐, 종묘, 사직, 문묘, 성곽, 교량, 산천, 봉수, 명승과 도성 밖의 동리와 산 등이 자세히 그려져 있어요. 





 궁궐에는 왕실의 권위와 존엄을 드러낼 수 있도록 여러가지 색상의 단청과 길상 문양이 장식되었으며, 왕의 공간인 정전과 편전에는 신성한 왕권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의 문양을 장식했다고 해요. 






 궁궐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져 화재에 매우 취약하고 행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서 화재가 일어나면 번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에, 신속하게 불을 끌 수 있도록 궁궐 곳곳에 사다리, 드므 등을 배치하였는데, 드므는 물을 담아 놓는 커다란 물동이로 불귀신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게 하여 화재를 예방하려는 주술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해요. 

 또한 전각을 지을 때에는 용(龍)과 수(水)자 등의 글씨를 적은 부적을 집어넣거나 불을 쫓는 신성한 동물인 용, 해태 등을 장식하여 화재를 막고자 했어요.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외국의 사신이 방문했을 때 임금과 신하들이 연회를 열기 위해 사용하던 장소로, 경회루는 불을 억제하기 위해 주역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하며, 연못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구리로 만든 용 두 마리를 넣었다고 하는데, 이 용은 그 중 하나로 경회루 북쪽 하향정 앞 연못 바닥에서 발견된 것이에요. 





 왼쪽부터 쌍사자상, 상서로운 동물 조각상, 봉황무늬 답도 순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쌍사자상은 궁궐 정전의 월대 난간 모퉁이를 장식했던 조각상으로, 벽사와 길상의 상징인 사자상은 왕이 있는 공간을 신성한 곳으로 만드는 장식 역할을 했어요. 

 상서로운 동물 조각상은 궁궐 계단을 장식했던 동물상 조각으로 창덕궁에 보관되어 있던 것인데, 보통 건물 외부에 설치되는 계단석은 돌로 만드는데 이 조각상은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이 특이해요.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답도는 정전의 월대로 오르는 계단의 중앙을 장식하는 판석인데,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 정전의 답도에는 봉황이 새겨져 있지만, 대한제국의 법궁 역할을 하던 덕수궁 중화전의 답도에는 용무늬가 새겨져 있어요. 





 상서로운 동물상은 창경궁에서 전래된 것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 영제교에 놓인 네 마리의 천록상과 마찬가지로 궁궐 안에 물이 흐르는 어구 위에 놓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물을 타고 들어오는 나쁜 잡귀를 내쫓는 벽사의 의미로 설치된 것이에요. 





 잡상이란 기와지붕 위 추녀마루에 흙으로 빚어 올린 작은 장식기와인데, 궁궐의 재앙을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만든 것으로 주로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과 토신들을 형상화해 놓았는데, 이들은 모두 액운을 막아주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고 해요. 

 잡상은 홀수로 올라가는데, 경복궁 경회루에는 가장 많은 11개의 잡상이 올려져 있다고 해요. 






 경복궁은 1395년(태조 4년)에 가장 먼저 창건된 궁궐로 명종 대의 대화재와 선조 대의 임진왜란으로 모두 소실되어 오랜 기간 동안 터만 남아있던 것을 고종 대에 재건해 놓은 것이에요. 

 경복궁은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정전인 근정전, 왕과 신하들이 정치를 논하던 편전인 사정전, 왕의 침전인 강녕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을 잇는 중심 영역을 주축선으로 하여 고대의 규범과 질서에 따라 대칭 구조로 건축되었어요. 

 고종 대의 경복궁 재건 공사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1867년에는 근정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이 완공되었으며, 1868년에는 경복궁으로 처소를 옮겼다고 해요. 





 조선의 동궐인 창덕궁은 1405년(태종 5년)에 이궁으로 지어진 궁궐인데,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된 이후 가장 먼저 복구되어, 경복궁이 중건되기 이전까지 오랜기간 동안 조선왕조의 법궁으로 사용되었어요. 

 창덕궁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부 형태나 규모가 개조되고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1990년대의 대규모 복원 사업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어요. 

 창경궁은 1483년(성종 14년)에 수강궁 자리에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창건된 궁궐로,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616년(광해군 8년)에 재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3년 본래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어요. 





 궁궐은 국왕과 왕실 가족들의 생활공간이자 국정을 운영하는 곳이었기에 경비가 삼엄했고,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어요. 

 궁궐 호위는 병조 관할 내병조의 총지휘하에 오위도총부, 삼군영, 수문장청이 담당하여 궁궐 담장 내부와 외부, 궁궐문의 3중으로 이루어졌어요. 특히 국왕이 주로 계시는 정전과 편전 일대 경호와 경비는 별도로 금군청, 호위청, 선전관청에 소속된 군관들이 담당했어요. 





 창덕궁의 낙선재와 연경당은 다른 궁궐과는 달리 단청과 장식을 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로 사대부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와 함께 거처할 목적으로 지었으며, 정조 때 왕의 독서처로 지었던 수강재와 나란히 이어져 있어요. 연경당은 효명세자가 창건한 곳으로 부모인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한 잔치가 행해진 곳이에요. 




 

 조선의 서궐인 경희궁은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집이 있던 곳으로, 1617년(광해군 9년)에 경덕궁이라 이름하여 영건하기 시작했고, 영조 대에 이름을 경희궁으로 고쳤으나 순조 대에 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후에 재건하게 되었어요. 

 덕수궁은 본래 월산대군의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궁궐들이 모두 불타버리자 선조의 행궁으로 사용되다가, 1611년(광해군3년)에 경운궁이라는 정식 궁호가 생겼으며, 1615년에 광해군이 재건된 창덕궁으로 어가를 옮기면서 별궁으로 남게 되었어요. 이후 1897년 고종 황제가 이곳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법궁으로 삼았으나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위되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은 고종의 궁호에 따라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어요.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의 현판으로, 글씨는 고종황제의 어필이며, 고종은 1907년 퇴위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다 생을 마감했어요. 





 국립고궁박물관 제2전시관인 「조선의 궁궐」 전시관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궁궐로 사용되었던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등 5개의 궁궐과 그 궁궐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조선의 5대 궁궐의 역사와 그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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